울산박씨 시제(時祭) 옥천파 및 심천파 오늘은 조상님과 만나는 날
울산박씨는 박혁거세의 36세손인 박윤웅이 흥려백에 봉해짐으로써,
울산을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고‘병인집’에 나타나 있다,
9세손 박보의 대에 와서 일부 후손들이 울산(蔚山)으로부터 경기도 양주(楊州)로 옮겨갔던 것으로 보이며,이후에 경기 지방에 정착 한 후손들이 북쪽으로는 개성,여주.장서 등지에 집거했다고 전한다,
또한 11대손 박창무의 대로부터 함북 부령에 들어가 살기 시작하여 정착한 후손들이 있다고 전한다,
그리고, 울산을 비롯한 경남 울산군 일원에 모여 살았던 후손들 일부가, 박함장(朴含章)이 임진난을 피해 경북 울진군 기성(箕城)으로 이거함으로써 울산군 뿐 아니라 월성, 경산, 영천, 안동 등지에서 터전을 잡았다,
경남 내에서도 양산, 거창, 합천 등지에 터전잡고 살았다,
북쪽 개성에 정착했던 후손들 중에서 대체로 24세손 박득화(朴得華)의 대로부터 황해도 재령(載寧)과 신천(信川) 금천(金川) 일원으로 이거한 후손들도 있다고 전한다,
그리하여 1930년 당시에 울산박씨의 주된 거주지가 경기도 강화군 화도면 내리, 충북 옥천군 이원면, 옥천읍, 영동군 심천면, 충남 예산군, 경북 울진군 온정면, 경남 울주군 태촌면, 황해도 재령군, 그리고 함북 부령군 청암면 등에서 거주한다,라고 말한다,
매년 10월 첫째주 첫 번째 일요일 날이면 옥천군 및 심천면 일가들이 모여 충북 옥천군 이원면 백지리 및 영동군 심천면 장동리는 이조 판서 홍문관 대제학 문경공 천익(1309~1399) 선생께서 생을 마치신 곳으로 울산박씨 선영에는 문경공의 자재 아들 한성판윤(지금으로 서울시장) 충경공 인량(1353~1428) 선생이 예장 된 곳으로 그 후 7~8대에 걸쳐 후손들이 산소를 모시는곳이다,
금일 친척 일가들이 함께 모여 시제를 올리니 조상들이 얼마나 흐뭇하고 기쁘지 아니한가, 매년 정성을 갖이고 조상을 모시는 일에 최선의 노력을 기우리고 있다,
우리들은 이렇게 애기한다, 부모님이 낳으시고 길으신 헌신의 마음을 담아 살아 죽은 그날까지 조상님의 은덕은 길이길이 가슴속에 남을 것이다, 조상님이시여 고맙고 감사하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