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양신문
2010년 시와문화 등단, 시집 <수단의 아이스크림>(시와문화,2017),
이훈 형님 한명환 시인
내겐 술 친구같은 형님들 몇 분이 계신다
안동에서 약국 종업원으로 외롭게 자란
열혈청년같은 안중근 후손 형님도 있고
월남전 막차로 다녀와
사업으로 잃기만 하다
절집, 교회생활 다 겪고 성당에 안착, 도통한 형님도 있고
일찍이 상경하여 사회봉사로 훌륭한 일 하시다
황금 같은 땀 흘리는 노가다 일 다니시는 성실한 형님도 있다
그 중 이훈 형님은 천안사람으로 지금은 독곶이 마을 하우스에 사신다
어릴적 공부하기 싫어
화물차, 총알 택시 핸들도 잡고
오골계 잡아 백화점 납품장사도 해서
목돈도 만졌지만 운이 거기까진지,
아내 암으로 오래 전 떠나보내고
병치레로 모아놓은 돈도 없어지고
지금은 고추.파. 감자. 고구마. 무.배추 길러 파는 농사꾼이다
올해는 가뭄.장마 번갈아
고추는 무름병으로 죽고
밑 안든 고구마라니
그놈 순이라도 뜯어 하나하나 껍질 벗겨
한 봉지에 이천원 농협에 납품한다
이훈 형님
최고 호사는 지인들 불러 모아
왕년의 오골계 세프 요리 솜씨 발휘하여
막걸리 잔치 벌이는 일
죽도록 일하시는 게 자신만의 유일한 건강 비결이라
너스레치는 팔십 된 훈이 형님
장례상장지도사로
시신들 염하며 영혼 인도해오신 덕에
교구장님에게서 천 시간 봉사장도
수여받으셨지
오늘도 독곶이 숲속교회 옆 하우스 들렀더니
씩 웃으며
한 잔 해야지 하며
냉장고에서 생 막걸리 큰 통 꺼내신다
누구라도 늙어
비참해지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이훈 형님 한방 오리탕에
부딪는 막걸리 잔들
“회오리 바람 불 제
뉘 한 잔 먹자 할꼬”*
*정철 <장진주사> 마지막 절
외톨박이 한명환 시인
내가 사주에 불이 없어
배가 차다
이렇게 밭에 누워있으면
어떻게 알고 햇살이
내 아픈 배를 데워준다
종일 땀 흘리고 이렇게 쉬니
참 좋다
부귀영화를 누렸으면
네 맘이 족할가
참 오래된 노래구나
사랑하는 아이들아,
외톨바기가 된 건 축복이란다
예수님도 죽는 순간까지 외로웠단다
알리 알리 사박다니
저들은 자기가 지은 죄를 모릅니다
소리지르시고 하느님 되셨지
네 몸이 하느님이란다
모두를 사랑하고 굳건하거라
주동아리 주점 한명환 시인
오래 전
문구점이었던 곳
아내랑 나
혼인 출장 사진도 찍어 준 곳
한강 둑 넘쳐
오물 허리까지 넘쳤던 곳
장모님 머리는 이고 허리 동여매고
아이들 키우시던 그 곳
사랑스러운 이들
다 떠나도
여전히
오일장 서는 장터에서
사과도 사고 귤도 사고
옛 사진관 자리
주동아리 주점에서
감자전에 막걸리 한 잔한다
저쪽 자리 술친구들이
명환이가 명환이가 하면서
자꾸 내 이름을 부른다
눈웃음 고운 아내 만나
비포장 길 덜컹거리며
예까지와서
누려온 기뻤던 순간들
한 잔 막걸리로
꿀꿀 흘러 내리는구나,